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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8:18-22 길르앗으로 가자 본문
2003-10-02 20:16:42   read : 2776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눈물의 예언자는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눈물로 이스라엘 백서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흘리는 눈물과 수도에서 나오는 수돗물은 그 성분이 다를까요? 결론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 신문에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성분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눈물은 물론 대부분은 H2O의 물의 요소와 규소화합물과 알부민 등이 있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눈물속에는 아주 특이한 한가지 화학성분이 들어 있는데 바로 [로이시닌게팔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용과 역할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양파를 썰 때 흘리는 눈물이나, 최루탄 가스가 눈에 들어갔을 때에 흘리는 눈물과 , 배우가 가짜로 흘리는 눈물, 분에 못이겨서 흘리는 눈물에서는 이 [로이시닌게팔린]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눈물과 위대한 예술에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
그리고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흘리는 눈물, 불쌍한 마음에 흘리는 연민에 눈물,
기쁨과 감격에 흘리는 눈물에는 이 [로이시닌게팔린]이 함유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눈물은 우리의 마음에 슬픔과 고난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로이시닌게팔린]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로이시닌게팔린" 이라 불리우는 성분이 함유된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며 하늘을 감동케 하는 분명히 무엇가 특이한 성분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레미야의 눈물 속에는 [로이시닌게팔린]이 가득했음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눈물]하면 연약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다가 먼저 우는 아이가 싸움에 진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결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이 이단 사상에 빠지고 방탕스러운 생활을 계속하자 아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15년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회개히기는 커녕 더욱 더 깊은 타락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하는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회개하고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의 문제는 부모의 눈물의 기도로 해결하는 방법이 최상의 해결책입니다.
눈물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진정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로이시닌게팔린" 이 가득한 눈물을 회복해야 합니다.
회개의 눈물, 감사의 눈물, 기도의 눈물, 사랑의 눈물, 감격의 눈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꿈꾸며 사는가에 따라 그의 삶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꿈구면 도적이 되거나 사기꾼이 됩니다.
남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 까 생각하면 위대한 사회사업가가 됩니다.
나라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위대한 애국자가 됩니다.

예레미야의 꿈은 진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것인가를 알고 눈물로 호소하는 위대한 선지자 였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꿈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창조 되었음으로 흑인도 백인처럼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흑인 해방의 꿈을 위해 부단히 혼신을 다하여 결국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나폴레옹도 꿈은 당시 유럽이 수십 개의 나라로 나뉘어져서 싸우기만 하니까
유럽을 하나로 통일하여 살기 좋은 유럽을 만들겠다는 것이 나폴레옹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3만 명의 군대를 모집하여 불모지의 땅에서 강한 전투훈련과 정신무장을 시켰고 강한 훈련을 받은 군인들은 생명을 걸고
나폴레옹의 뒤를 따랐고 결국 어디를 가도 승리하는 무적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남 유다의 나라에도 위대한 임금 요시아가 나라의 부흥에 꿈을 갖고 종교를 개혁하고
신앙의 부흥과 민족 중흥의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요시아 왕의 죽음으로 유다는 국가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서 눈물로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 나라는 북쪽의 앗수르의 계속된 침략으로 나라의 기력을 잃었으며
또한 남쪽의 애굽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북쪽의 앗수르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세력과
남쪽의 애굽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세력으로 국론이 갈라져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일부에서 북한과 대화를 열고 불가침 조약을 맺어야 한다며 친북 정책을 펴는 세력이 있고
아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데는 미국 밖에 없다는 친미 세력으로 국론이 분열된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아니다 그런 두 강국보다도 새로운 신흥제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바벨론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도 북한도 미국도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강대국으로 변하는 중국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벨론은 유다에서 멀었다며 아무도 바벨론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부흥으로 점점 상황이 우려했던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며 번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패역한 유다를 징계할 하나님의 채찍의 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바벨론의 칼은 무자비하여 유다 백성을 죽이고 사로잡아갈 것이며 유다 전역을 초토화시킬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사실을 똑똑히 보았고 그러한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괴로워했고 눈물로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빠져 있었고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은 물질적인 축복 위주의 약속을 했습니다.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짖말을 믿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거룩한 여호와의 성전이 있으니 겁낼 것 없다"고 하면서 " 성전 자체를 우상시 하였습니다.
성전은 경건할 필요가 있지만 성전 자체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은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가 크면 자신의 신앙이 큰 것으로 오해를 하고 큰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교만 병에 들어서 작은 교회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성전을 우상시 하는 잘못된 신앙생활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저지르는 죄는 [내 탓이 아니라 하나님 탓]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의 눈물은 [택한 백성을 심판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보이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눈물은 곧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눈물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로써 완성되었다!

예레미야가 유다를 향하여 통곡한 것은 바로 오늘 우리의 상황을 보고 통고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정치가들, 기업가들, 공무원들, 국민들이 지금 이 IMF 경제 위기 속에서 정신들을 못차리고 있습니까?
매일 같이 여야는 막가파 식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정경유착으로 특혜금융으로 국고는 바닥나고 서민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중소기업은 침체로 빛 더미 위에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의 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이름 있는 기업인들은 천문학적인 외화를 해외에 빼돌리는 것을 볼 때 가슴 아프기 짝이 없습니다.
IMF 위기가 시작될 때에 김포공항이 한산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 국민들은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가지고 있던 금붙이마저 다 내놓아 국난에 동참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전세계에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너도나도 여름 피서철에는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으로 공항이 북새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1984년에 이스라엘이 IMF 위기를 겪을 때,
은행은 부실 대출로 파산 직전에 몰렸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나서 달러는 폭등하였습니다. 외국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며 외환위기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년 사이에 물가는 5배나 뛰어 올랐고 이스라엘 화폐는 점점 쓸모 없는 휴지조각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주식시장도 폐장하고 국가부도 사태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IMF 사태가 빚어지자 정쟁을 일삼던 정치인들은 서로 화합하여 두 정당이 2년씩 번갈아 가며 집권하기로 하였습니다.
국회는 연중무휴로 법안처리에 신속히 대처했으며 국회 사무실은 새벽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절약을 생활화했습니다.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하였고 주부들은 어른들의 옷을 줄여 아이들에게 입혔습니다.

정리해고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은 퇴출하고 기술 중심의 하이테크산업이 육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세계의 신임을 다시 획득하여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결국 그들은 1년만에 위기를 벗어났고 3만에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하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 나라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의 문제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이 욕심과 권력과 사치에서 회개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20절에 그들은 또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20절)고 통곡하였습니다.
당시 그들은 남쪽의 대국 애굽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애굽에 많은 의지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애굽은 노쇠한 제국이어서 힘을 쓰지 못할 형편이었는데 유다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침공해 오면 당연히 애굽이 도와주리라 기대하였지만 추수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 가도록 애굽의 원조군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틴은 보통 6월 초여름에 추수를 하였기 때문에 이 여름이 군사행동을 하기가 가장 좋은 때였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침공을 맞아 이스라엘은 혹시나 하고 여름이 다 지나도록 애굽의 원군을 기대하였지만 애굽군대의 출동 소식이 없자 크게 실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정말 우둔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범죄 때문에 온 시련이요 환난인데 그들은 애굽 연합군의 도움을 기다리면서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나라의 위기가 정권 담당자를 비롯한 금융과 대기업의 문제도 있었지만
더욱 큰 원인은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물질과 쾌락의 우상숭배에 빠진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고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저는 우리 민족의 죄인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올시다. 우리 나라가 독립 못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나 때문입니다"고 회개하였습니다.

우리도 굵은 베옷을 입고 내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긍휼하신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와 사회와 가정의 모든 문제를 나 때문이라고 회개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개인과 가정과 국가가 삽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입니다.

이제 이 백성은 기르앗으로 가야 합니다.
"길르앗에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의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렘 8:22).

길르앗이라는 곳은 요단 동쪽땅입니다.
길르앗은 유명한 유향 생산지입니다.
길르앗에서 생산되는 유향은 약재로 사용되었습니다.
길르앗의 유향은 질병을 치유하는 그 당시의 가장 비싼 최고의 명약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 창조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길르앗의 향료요, 반석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길르앗에 가면 병을 고치는 약제인 향료가 많고
길르앗에 가면 병을 고치는 의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툭하면 깨지고, 금가고, 긁힙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상처난 그대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피가 나는데, 곪아 있는데, 썩어져 들어가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금 까지 누군가에게서 부터 받은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치료 받아야 할 마음에 상처와 육신의 질병이 누구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토록 예레미야가 외첬던 길르앗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길르앗의 의사를 부둥켜 안아야 합니다.
그 분이 처방해 주시는 길르앗의 향료로 우리의 상처가 치료 받아야 합니다.

그분은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부러진 것도 싸메어 주시고 상한 곳도 새살이 돋게 하시고 죽은 것도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길르앗의 향료가 되시며 우리의 상처를 완전하게 치유하시는 의사이십니다.
단순히 상처만 아물고 치유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에서 축복의 향기가 나게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치유가 이루어 집니다.

길르앗의 의사가 되시는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전속의사요, 우리의 주치의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히 길르앗에 가서 주님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길르앗으로 가야하는 두번째 이유는, 길르앗에 도피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기록은 안되어 있지만
이 길르앗에 가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하여 유명한 도피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장인 라반을 피해 달아았을 때 길르앗으로 도피했으며 (창31:21-55),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겼을 때(삼하17:22) 길르앗으로 피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르앗은 죽음의 절박한 상황속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고 생명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도피성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이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피신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과실치사
즉, 우발적인 사고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였을 경우 그 살인자가 피신하여 살 수 있는 장소와 방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길르앗에 가면 우리가 피할 세가지 도피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 도피성은 교회입니다.
이 시대의 도피성은 교회입니다.
신약시대의 도피성은 교회이고 우리는 교회로 피신해 온 죄인들입니다.
바로 이 교회를 통하여 참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여서 생명의 보호를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의인들이 모인 단체가 아닙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교회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염려에 사로잡힌 모습 그대로 나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두 번째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 희를 쉬게 하리라."

'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와서 구하 라, 내게로 와서 맡기라, 나와 함께 변론하자.' 주님과 더불어서 해결 받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마가복음 2:17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 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 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덴동산을 잃은 비극만 아니라 자기 마음의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 가정의 에덴동산을 잃어버립니다.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시 46:1)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 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50:15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 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주님만이 우리를 이해해주시고, 주님의 손만이 우리를 능히 구원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십니다.

셋째,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이 도피성입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가정 큰 도피성은 바로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예비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가 사는 곳은 잠시 기거하는 장막 입니다.

현재 우리가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내 뒤에 실패를 바라보지 마시고, 내 앞에 있는 천국의 소망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고난 풍파 많은 한 많은 세상이라고 탄식하지 말고
오늘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천국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사는 생활을 참고 인 내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말 후회하지 않는 보람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길르앗에 가지 못하는 가장 큰 방해물은 우리의 믿음이 없는 신앙입니다.
사람들은 질병을 바라보면서 고치기 힘들어 보이는 병 같으면
"이 병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 또는 나를 연단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병이다."라고 쉽게 말합니다.
듣기 좋은 말입니다. '그래 연단을 위해 주시는 병이니 무조건 참고 기다리자라고 말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질병을 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고쳐주시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병들어 시들시들해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부모님의 심정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더 아픈 것입니다.

길르앗에는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하여 관심과 배려가 있는 사람들 입니다.
사무엘하 10절에서 12절을 보면
'낮에는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암몬 족속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했을 때에 길르앗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 암몬 족속들이 얼마나 강력해 졌는지 싸워서 이길 재간이 없어서 '항복하겠다'고 했더니
암몬 족속이 말하기를 '길르앗의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전부 오른쪽 눈을 빼어야만 너희들의 항복을 받아 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가막힌 사연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사울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암몬 자손들을 깨끗이 물리쳤습니다.

그 후 40년의 세월이 지나고 사울왕과 요나단이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사람에게 패전을 하고 모두 전사했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왕과 그 아들 요나단의 시신을 끌고 가서 벳산 성벽에 시신을 매달아 조롱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는데 40년 전에 은혜를 입은 길르앗의 젊은이들을 결사대를 조직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벳산 성벽에 올라가 시신을 가져다가 화장을 하고 유골을 잘 보관하였습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40년 전 일을 기억하고 비록 상대방이 죽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다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길르앗에 가서 배울 것은 길르앗 사람처럼 상대방에게 괌심과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에릭프롬이라고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사랑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을 얼만큼 사랑하는가를 알려면 관심과 베려가 얼마나 있는가를 조사해 보면 알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합니다.
머리 스타일이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합니다.
"머리 스타일이 참 잘 어울립니다" "어쩜 그렇게 옷이 잘 어울려요 너무 너무 멋있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머리 스타일이 달라진 것을 못 알아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상대방을 위하여 배려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다가도 상대방이 생각이 나면 남겨 두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용돈이 없어 보이면 은근히 자존심 상하지 않게 호주머니에 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편이 실직하고 수입이 없으니까?
박대를 하고 이혼을 하자고 했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건이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사랑의 결정체요
구원 받은 사람이 할 일은 사랑하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기독교에 최고의 덕목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정이 공동체로서 성공적인 공동체를 이루려면 먼저 사랑으로 승리하여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이 나 좋을 대로, 나 이로울 대로, 나 편할 대로만 행동하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너에 대해서 내 알 바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동체 생활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공동체 신앙 생활에 필수요건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공동체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너에 대한 배려는 없고 전부 나 위주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사장은 종업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습니다.
또한 직원들은 회사는 망해도 내 월급만 챙기면 된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회사는 얼마 안가서 망합니다.

우리는 모두 상대방에 대한 괌심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길르앗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길르앗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연약한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교만과 자존심 그리고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하는 미움과 원망이
우리로 하여금 길르앗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달려나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책임입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길르앗에 가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는 믿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길르앗에 가기 위하여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하는 마음을 소지하여야 합니다.

길르앗에는 향료가 되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길르앗에는 의사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길르앗에는 피난처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보고 오라고 안타까이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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