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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은혜로 공장공원에서 사법시험 합격한 김미애씨 인생
2003-11-01 09:38:01   read : 13152















“어려움 딛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 너무 행복해 태양이 나만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김미애 씨의 인생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그녀는 고등학교 중퇴, 방직공장 공원, 초밥집 사장까지 수많은 반전을 겪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가 버린 듯 허전하다”며 인터뷰를 꺼리는 김미애 씨를 설득해 만났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그녀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수업이 끝났는지 사법연수원에서는 많은 연수원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한 손에는 법전을 든 모습이 당당해 보였다. 김미애(34) 씨는 정장을 차려입고 쑥스러운 듯 다가왔다.


자궁암 말기, 어머니는 핏기 없이 누워 있었다

김미애 씨의 고향은 경북 포항시 구룡포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가정에 큰 변화가 온 것은 12세가 되던 해 봄이었다.
“아버지는 배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망해 빚만 잔뜩 지고 잠적했습니다. 어머니가 해녀로 살면서 저희를 먹여 살렸죠.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가 병원에 갔습니다. '집 잘 보고 있거라' 하고 엄마 옷을 챙겨 들고 가시는데, 직감적으로 큰일이구나 싶었습니다. 결국 몇 달 후에 돌아온 어머니는 자궁암 말기였지요. 길어야 세 달이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그녀에게 함께 교회에 다니자고 했다. 오로지 어머니 병을 낫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녀는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구역예배를 다녔고 인근 7∼8개 교회 부흥회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리어카에 어머니를 태운 채. 걷지도 앉지도 못하는 어머니는 난로 옆의 마룻바닥에 누워서 예배를 봤다.
“어머니는 그러고도 4년을 더 살고 돌아가셨습니다. 중2 때 돌아가셨으니 무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엄마가 옆에 있는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늘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우울했던 포항여고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명문인 포항여고에 입학했으나 입학금만 겨우 낼 수 있었다. 매일매일 학교 갈 차비가 없어 아침마다 남의 집에 차비 빌리러 다니는 게 일과였다. 참고서를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오직 한 분, 고향 교회의 류광하 목사님만이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돈을 털어 주었고, 그 돈으로 일주일을 겨우 버텼다.
“그때 저는 너무 우울했습니다. 친구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도시락을 못 싸가서 늘 방황했고, 성적도 점점 떨어졌습니다. 의미 없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해 5월 김미애 씨에겐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불우이웃 돕기 시즌이었는데, 반 친구들이 그녀에게 나가 있도록 권했다. 돈을 모아 건네줬다. 전교생이 모여 있는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학교를 그만뒀다.
“제가 원했던 것은 평소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고, 관심이었는데….”
김미애 씨는 그 길로 교회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그녀도 방직공장에 취직했다. 공장에서 3교대로 일하며 야간고등학교에 다녔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먼지가 너무 많은 곳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하고 학교에도 다녔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일해봐야 별로 내 인생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월을 낭비했지요.”


스물네 살에 초밥집 사장이 되다

“나이 스물둘이 되자 위기의식이 생겼습니다.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는구나!' 싶었죠. 관광 통역가이드가 되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어요. 통역가이드는 제 길이 아닌 것 같아 일본인 관광객 대상 쇼핑센터에서 일했습니다. 월급이 50만 원이었는데, 3년 동안 이 악물고 1,000만 원을 벌었습니다.”
그 돈을 밑천 삼아 부산에서 15평짜리 초밥집을 냈다. 그녀의 나이 24살이었다. 시장도 직접 보고 초밥도 만들었다. 잠도 안 자고 혼자서 다 하다보니 일주일 만에 살이 5㎏이나 빠졌다. 직접 찾아다니면서 홍보를 했더니 사람들은 “나이 어린 아가씨가 기특하다”며 자주 찾았고 단골도 생겼다. 한 달에 300만 원을 벌 정도로 수입이 괜찮았다.
“돈을 많이 버니까 친구들 만나서 나이트클럽에도 자주 갔습니다. 엄청나게 잘 놀았죠.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있었습니다. 난 공부하는 게 참 좋은데, 어릴 때 내 꿈은 이게 아닌데 어쩌다 여기 있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죠.”
어느 날 부산 부전시장에서 장을 본 후 가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지하차도로 내려가는 순간 양 벽이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았다. 죽음이 떠올랐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곤 9년 동안 다니지 않던 교회에 다시 나갔다. “지금 하는 것 다 청산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했다.




동아대 법대생,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정말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찾게 해달라고요. 선교사를 할까, 법관을 할까 고민하다 법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장사하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을 많이 봐왔죠. 결정한 후에는 뒤도 안 돌아봤습니다.”
27살에 대입 수능 공부를 시작해 동아대 법대에 입학했다. 학교 고시반 입실시험에서 1등을 해 숙식 면제와 보조금 혜택을 받았다. 김미애 씨는 “수석 해야만 장학금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식할 정도로 공부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졸업반 때를 제외하고 내내 수석을 차지했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수업시간이 스트레스 해소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의 말씀을 듣고 공부한 것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너무 좋아서 혼자서 웃고 다닌 적이 많았습니다. 태양이 나만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새벽 5시 30분이면 학교에 나와 도서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기도하고 성경책을 읽고 난 후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12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 있었다. 2001년 1차 시험에 합격해 동아대에서 매달 보조금 42만5,000원을 받았다.
“2차 시험 준비를 할 때에는 서울 신림동에 올라와 고시원에서 생활했거든요. 그때 온몸은 안 아픈 데가 없었고,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때 제 책상 위에 쓰여 있던 단어가 1)엄마 2)내 고향 바다 3)조카 이름이었거든요. 그걸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랬죠.”
김미애 씨는 결국 2002년 2차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합격하던 날, 그녀는 휴대폰도 꺼놓은 채 PC방에 가서 혼자서 결과발표를 봤다. 확인 후 휴대폰을 켜니 축하한다는 음성이 이미 많이 남겨져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 주고 싶다

“시험 합격 후 고향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시골 교회에서는 잔치가 벌어졌고 도로변에 '장길교회 출신 김미애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습니다. 동아대에도 보답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형법 무료특강을 해줬습니다.”
그녀는 지난 2월 21일 서른다섯에 학사모를 썼다. 3월부터 연수원 생활을 시작했다. 연수원에서 영어회화를 공부하리라 마음먹었건만 수업 따라가기도 바쁘단다.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이라는 김미애 씨의 말에서 연수원생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엿볼 수 있었다.
김미애 씨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그녀는 1년 동안 한 학생에게 매달 조금씩 후원해준 적이 있다. 절대 학생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가끔씩 집에 들러 먼발치에서 학생의 모습을 지켜만 봤다.
“저는 깨끗한 부자가 되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한비야 씨처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프리카에 가서 난민들에게 선교도 하고 봉사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요.”
“결혼은 안 할 거냐”는 질문에 “하겠죠 뭐”라며 웃었다.

p.s. “한 인간을 완전히 낮춰서 독자의 흥밋거리에 기여하는 수준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냥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는 소개 정도, 그리고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그 이유, 하나님과 나의 엄마…. 지금 어려움에 빠져서 우울하고 힘든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게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다만 저를 크게 포장하거나, 아주 추락시켰다가 영웅 만들지는 말아주세요. 아직 내면의 세계를 채워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이렇게 밖으로 내놓으면 안 되는데….”
김미애 씨는 기자의 이메일에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그녀를 설득해 인터뷰를 했지만, 허전하다는 마음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녀를 솔직하게 표현했을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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