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지나고 몇 년 후, 그러니까 17살 되던 해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열심히 주일학교 반사를 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여전도사님들이었다. 그래서 소꿉 친구이자 함께 주일학교에서 봉사하고 있던 반사들 셋이서 주의 종의 길을 가기로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
후에 두 친구는 신학을 졸업하고 전도사로 단독 목회를 훌륭하게 되었으나, 나는 어머니의 반대로 신학을 하지 못하고 집안 살림을 맡아 꾸려 가야 했다. 26세가 되자 어머니는 그만 안 믿는 사람과 결혼을 시켰고, 남편은 결혼 전에 예수 믿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만 교회에 다녔다.
남편은 군인이었는데 제대를 하고 사회에 나오니 할 일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얼마나 부지런히 살았는지 안 해본 것이 없이 살았다. 일수놀이, 계주, 화장품 가게, 옷가게 등등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7년 동안 세상일에 정신없이 살았다.
열심히 살았으나 남은 것은 결국 빚밖에 없었다. 남편은 속을 썩이며 돈을 가져다 썼고, 내가 하던 계도 깨져서 돈을 많이 잃게 되었다. 도움은 되지 않고 짐만 가져다주는 남편이 얼마나 미웠던지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날마다 살인죄를 짓고 있었다. 나는 결심을 하고 남편과 3년만 헤어져 살아보자고 합의를 하고 충청도 합덕에 가서 막내 아이를 데리고 살길을 찾았다.
안수기도로 장암 말기에서 치료를 받다
나는 마음과 영이 병들어 가면서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배가 아프고 피고름이 자주 쏟아졌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는 장암 말기였고, 의사는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고 전혀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집에 돌아와 죽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달 동안 밥을 먹지 못했고 입술은 새까맣게 타 들어갔다. 눈 뜰 기력도 없이 누워 있을 때였다. 갑자기 커다란 구렁이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안간힘을 쓰고 눈을 뜨면 막내 아이가 미음을 떠서 내 입에 넣어 주기도 했으나 들어가면 즉시 배가 칼로 째는 것 같이 아팠고 곧바로 항문으로 검은 피가 되어 쏟아졌다.
이웃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아직 죽지 않았나 봐. 죽으면 아이들을 고아원에 데려다 줄 수밖에 없겠어!"하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기도 했다.
절망 끝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저녁 때, 교회 집사님들이 찾아와서 나를 업고 교회로 갔다. 용하산에서 장기 금식을 마치고 성령의 불을 받고 내려온 전도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전도사님이 안수하며 방언 기도를 하시더니 통변을 해 주셨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생명만은 다치지 않게 붙잡고 계신다며 진작에 하나님이 쓰시려고 했는데 세상일에 빠져서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3일 동안 세 번 안수기도를 받았고 항문으로 많은 양의 검은 피 같은 것을 쏟았다. 서서히 통증이 사라지면서 식욕이 당겼고 죽을 끓여 달래서 먹기 시작했다. 날로 회복되면서 힘을 얻었고 장암에서 완전히 치료를 받았다. 할렐루야!
개척교회 사명자로 부름을 받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다. '나같은 것이 무엇인데 죽을 목숨에서 살려주셨나?' 세상 모두가 나를 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니 만 분지 일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낮에는 호떡 장사를 하고 밤에는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울었고 남편을 미워했던 것을 회개하느라 울었다.
개척 교회를 위해서도 일년 반 동안 철야 기도를 했더니 장로님들이 찾아와서 교회를 세워주셨다. 그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시키면서 개척 교회를 세우는 일을 시키셨다. 가는 곳마다 심방하며 전도하게 하시며 부흥시키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하게 하셨다.
어느 날 밤에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0시에 70일 작정 기도를 하라고 빨간 글씨로 선명하게 보여주셨다. 70일 기도가 끝나갈 무렵 서울에서 한 전도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빨리 올라오라고 해서 갔더니 감리교 연합신학교를 보내 주면서 등록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51세였다.
후두암에서 치료를 받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기이한 체험을 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아는 목사님의 전화가 왔다. 현재의 교회 사역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양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며 서대문 시립병원 베데스다 교회로 가라고 했다. 나는 그 문제를 놓고 한 주간 기도하고 있을 때 꿈을 꾸었다.
베데스다 교회 안에 네 귀퉁이에 악마가 진을 치고 있었고 300명의 시신이 누워있었는데 발로 건드려 봤더니 죽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생명이 붙어있는 환자들이었다. 한쪽 귀퉁이에는 고깔모자를 쓴 무당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옥사자가 몽둥이를 들고 있고, 절의 중은 지팡이를 들고 나를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그들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복음의 검이 있고 예수이름으로 나간다.'며 공중에서 그들과 싸워 물리쳤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하나님의 사명자는 문제 있는 곳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로 그 교회로 가서 면접을 보았고 담임 목회자로 채용되었다.
그곳에 부임하고 보니 오갈 때 없는 결핵 환자들이 모여서 무료 진료를 받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심방하고 눈물로 기도해 주었고 새벽부터 저녁 9시까지는 입을 붙일 시간도 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그뿐 니라 어 가는 사람들 임종기도와 장례 예배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렇게 4년 동안을 일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오면서 목이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 검사 결과 후두암으로 판명이 되었다. 의사는 수술을 해도 치료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해서 나는 칠보산에 가서 한 달 작정 기도를 했다.
마지막날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좁은 목구멍에 까맣고 작은 벌들과 구데기같은 많은 벌레들이 목구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글바글 붙어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 벌레들이 입을 통해서 줄줄이 나가는 것이 보였는데 마지막 구더기 벌레 2마리가 왼쪽에 붙어서 나가지를 않고 있었다.
그후로 후두암은 깨끗이 치료를 받았으나 편도가 약해서 무리한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시골 교회로 왔다. 이제 남은 생애를 시골 교회 목회를 하면서 자그마한 양로원을 지어서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도와주며 살려고 한다. 그 뜻과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이번에 강남금식기도원에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