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S 교육 텔레비젼 방송국에서 어떤 미국인 화가가 쓸쓸한 시골 마을에 저녁 풍경을 그리
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그렇게 풍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생철로 만든 허름한 집들, 앙상한 나무가지,
푹푹파인 눈녹은 비탈길, 춥고 황량한 경치였습니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썰렁한 분위기의
평범한 농촌의 한적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림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갈 때에 이 화가는 어느 작은집 창가에다 등불을 그리기 시작하
더니 등불에서 나온 불빛으로 화면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자 그 황량하던 풍경은 어느새 따
뜻하고 생기가 발랄한 경치로 뒤바뀌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겨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분명히 누추하고 어둡고 가난하고 인색하고 쓸쓸하고 외로왔던 마을에
어느집 창가에서 노란 불빛이 나오자 온 마을이 갑자기 따듯해지고 온화하고 훈훈한 정감
있어 보이고 사랑이 넘치고 소망이 가득찬 마을이 된 것입니다.
그집 창가에서 나온 한줄기의 노란 불빛이 마을 전체를 밝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 황량한 들판처럼 보일지라도 빛되신 예수님
의 광명의 밝은 빛을 받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활력과 생기가 넘치고 소망과 기쁨속에서 살
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직접 빛을 만들어서 내보내는 발광체와 남의 빛을 받아서 밝히는 반사체가 있습
니다.
태양과 촛불과 전등과 반딪불은 발광체입니다
별과 달과 산과 들과 집은 모두가 반사체입니다.
사람도 반사체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빛을 받아야 할까요 바로 예수님의 빛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 이십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였으며 그러니 너희는 나
의 빛을 받아서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빛을 받아 세상을 비추
는 빛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1999년을 한해를 보내고 2000년 새해를 시작하는 역사적인 시점에
서 있습니다.
묵은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감회에 젖게 됩니다
기뻤던일, 나를 슬프게 했던일, 아쉬웠던 일, 비통했던 일, 후회스러웠던 일등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지난날에 겪었던 모든 일을 잊어 버려야 합니다. 일
순간에 갑자기 잊을 수는 없어도 지속적으로 서서히 지난일은 잊어야 합니다
앞을 바라 보는자 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일에 집착하여 뒤돌아 보기만 한다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설령 좋았던 일이라도 우리는 잊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았던 일이라고 계속 그 일만 생각하게 되면 교만에 빠지기 쉽고 만족하지 못한
현실에 실망하고 절망에 빠지기 쉬운 법입니다.
마치 신혼주부가 결혼전에 가졌던 꿈과 결혼식에 화려함만을 생각하고 닥친 현실에 적응
을 못한다면 그는 불행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에 일등을 하고 반장을 하고 장학금을 타면서 대학을 나온 것들이 지금 닥친
나의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며 오히려 장애물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잘못했던일, 슬펐던 일, 상처받은 일, 실패했던 일 들은 지금 당장 모두 깨끗이 잊
어 버려야 합니다. 잘못했던 일에 계속 집착하면 사람은 결국 좌절과 열등감에 빠지고 새로
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짐이 될 뿐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일은 모두 잊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담지 말고 새로운 가죽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습
니다
사도바울은 지난일은 모두 배설물처럼 다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앞으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가문은 참으로 뛰어났습니다
사도바울은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는 할례당이라는 선택된 민족이었고 또한 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인 정통있는 이스라엘 가문이었고 사도바울의 조상은 베냐민 지파였으며 히브
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었고 율법적으로도 완벽한 흠이 없는 바리새인이요 당시 가장 유명한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수제자였습니다
요즘으로는 치면 집안이 좋은 일류 가문에서 태어나 강남 8학군에서도 일류 고등학교를 나
와 서울 대학교에서도 가장 인기 좋은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아주 장래가 촉
망받고 인격적으로 완벽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특권들을 사도 바울은 배설물처럼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왜 사도바울이 그 훌륭한 족보와 가문과 학벌과 사회적 신분을 헌신짝 처럼 버렸을 까요
그것은 그가 앞으로 신앙 생활하는데 예수 믿는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고는 참다운 예수의 제자가 될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신분이 오히려 장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 새로운 2000년을 맞이하여 내 신앙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있었다면 우리는 헌
신짝처럼 과감히 버릴 줄을 알아야 합니다
1) 첫 번째 우리의 자존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자존심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헛된 자존심을 버리고 채찍을 맞고 가시관을 쓰고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면
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예수님의 자존심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라고 자존심이 없었겠습니까?
오직 인류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위하여 자존심을 버리신 것입니다.
자존심이 내 신앙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래도 내가 일류 대학을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 학벌없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존심이 있지 내가 어떻게 남을 섬기고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자존심이 있지 내가 왜 남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예수를 전한단 말인가?
자존심이 있지 내가 아무리 없기로서 놀면 놀았지 어떻게 장사를 하고 또 노동을 한단 말
인가
어느 사업에 폭삭 망해서 어려움에 처한 집사님이 저와 상담하면서 하는말이
이 시점에 가장 어려운 것은 자존심입니다 라고 말 했습니다
참으로 솔직한 고백입니다
우리도 참된 크리스천의 삶을 위하여 세상체면 헛된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섬기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내 마음속에 자존심
입니다
예수님처럼 의를 위하여서 우리의 자존심을 잠시 접어 둘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둘째 욕심과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남앞에서 내노라하고 고급 승용차에 고급집
에서 살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영이요 죄악이요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항상 헐벗은 가난한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김목사는 헐벗고 가난하고 정신이상에 지체 부자유의 사람들과 함께 목회를
하는데 그에게 문제가 뭔가 물어 보면 먹고 사는것 끼니를 이어가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
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몸하나 뉘일 집 한칸이 없었고 항상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
하여 살다 가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합니다
재물이란 사람이 얻고자 하여서 얻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것이요 안주시면
아직 받을 만한 자격이 안되었기 때문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재물이 주어져서 타락의 길로 빠지는 것보다 차라리 주지 않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는 말씀을
항상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해를 맞아서 우리는 각자 여러 가지 버려야 할것이 많을 것입니다.
남을 미움하는 습관, 혈기, 남의흉보는 습관, 정욕
신경질,우울증,게으름,핑게 ,조급함 나태와 안일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저는 타이타닉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배가 난파되는 시점에서 한시라도 배가 오래 물위에 뜨기 위해서는 배에 있는 짐들을 버려
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귀중한 보석이라도 배가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기 위
해서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영화에서 그들은 버리는 것을 두려워했고 결과는 모두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참된 예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 세상에 헛된 부귀영화를 버려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면서 지난날 혹시라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를 용서해
주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잘못을 구하고 또 내 마음에 슬픔일과 억울함
과 마음 상할 일이 있었다면 우리는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푯대를 향하여 우리는 신앙의 경주를 하여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여 세상에 짐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새로운 신앙에 경주를 합시
다
이번에는 금년처럼 혼자 뛰지 마시고 주님과 함께 뜁시다
신앙이란 경주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 까지 천국문을 향하여 우리는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고 박해하는 것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가족과 형제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일수도 있고 환경일수 있고 또한 악한 사
단과 마귀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처럼 신앙에 경주를 벌입시다
지금까지 손목시계 처럼 나만을 위한 크리스천이 아니라 뻐꾸기 자명종 시계처럼 남을 위
해서 울리는 남을 위해서 복음에 종을 울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빠져 나온 후 그들의 삶은 별로 부족함이 없었습니
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양식도 떨어지지 않았습니
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만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역사적인
전날 밤이 되었습니다.
3장 5절에 보니까 (읽어줌)
이때 이스라엘 민족의 대장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에게 "내일 드디어 우리 민족이 40년을
기다려온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역사적이고 감격적이고 중요한 날이니 총과 칼을 잘 수리
하고 열심히 싸울 준비를 하라" 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성결하라! 내일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기적을 보여 주실 것이다"
왜 여호수아가 이러한말을 하였을 까요?
그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40년간 너무나 많은 범죄와 타락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새로
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우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가 되었
으며
므리바에서 물이 안나온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들은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의식주의 문제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끊임없는 범죄와 무질
서와 교만과 게으름과 나태와 안일속에서 살아 왔기에 여호수아가 새로운 가나안 땅이 중
요한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서울의 광화문 미국의 뉴욕과 프랑스의 에펠탑등 그리고 울릉도 그
리고 동해의 정동진등 온통 세계는 새로운 밀니업 새천년을 맞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로
복새통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헹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새해가 시작 되었다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 새로운 천년을 살아갈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었다고 시간이 길어지고 햇빛이 밝아지고 온도가 떠 따뜻해지는 것
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이 사람들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11절에 이제 요단강을 3일후엔느 건널 터인데 너희는 만
반의 준비를 하라는 것은 마음의 준비 자세 일사 각오의 정신 자세와 새로운 결단과 결심
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된 새천년 희망의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자세가 바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퀴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바퀴고 새로운 결심과 결단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7절에 의하면 먼저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은 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소화불양,위
괘양,가슴앓이 당뇨, 고혈압, 노이로제,무기력증, 의욕상실,등으로 근심과 두려움이 건강
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간질과 암병도 근심과 걱정등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거듭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도 그 속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찬 것입니다. "내가 감히
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호수아야 강하고 담대하라" 외치고 있는 것이며 이사간
우리에게도 "너희들이 금년을 살아 가면서 어떻한일을 만나든지 강하고 담대하라고 우리에
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바로 강하고 담대한 용기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 가다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에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은 겁이 많은 사람이요 걱정과 의심이 많은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금년 1년을 살아 가면서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할 지라
도 강하고 담대하여야 합니다.
존 웨슬리가 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커다란 폭풍을 만나서 배가 요동을 치고 금방이라
도 뒤집힐 지경이 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 바다에서 빠져 죽는 구나 생각을하고
있는데 배 한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뺑둘러 앉아서 기도하고 찬양을 하는데 그들의 표정
이 너무나 평안하고 행복하기 조차한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가 알아보니 모라비안 교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들은 무섭지 않습니까?"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왜 무서워 합니까?우리의 생명을 예스
님께 맡기고 죽어도 천국에 갈 터인데 무서울게 무었이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었
습니다.
웨슬리는 이말에 자신의 신앙이 나약하고 이름뿐인 신아인 것을 깨닫고 다시 중생하는
기회를 찾았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