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광교회 교인들은 아픔이 많은 교인들이다.
초기 창립교인들은 김영민목사와 함께 방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김목사는 교회건물을 재단에 등록시킨 다음 입당예배를 마치고 그 다음날 교회를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이들은 월세방 한간이라도 기쁘게 신앙생활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쓴나물을 먹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이런 공감대 때문에 담임목사가 간섭을 안해도 철저하게 순종한다고 한다.
98년 5월 9명의 교인이 처음 개척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 점점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예배를 드릴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서 날이 좋은 날은 돗자리를 들고 낙동강변에서 야외예배로 드렸고, 비가 오는 날은 체육관 지하에서 예배를 드렸다.
IMF 때 부암3동에 장로교회로 사용하던 건물을 보증금3천만원과 월세1백만원에 임대하여 3년을 지냈다. 도시개발공사 소유 상가 140 평을 2억에 불하받아 65평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건물을 구입할 때 부산서지방(당시 석준복 감리사)에서 지방회에서 적립해둔 교회개척기금 7천만원을 지원 받았다.
밥상머리 목회
“목회란 한마디로 열등감을 치유하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그 속깊은 곳을 헤아려보면 거기에는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교회에서 설치는 사람도 열등감 때문에 설치고, 못하는 사람도 열등감 때문에 못한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 동기와 본질을 김목사는 열등감으로 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열등감을 캐어하고 매만지는 것이 목회자의 몫이라고 했다.